2023년,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신문에선가 봤다.
이십대 초중반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고
대형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오는 시간들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에 쌓이는 책들이 부담스러워졌다.
첫 아이를 낳기 전 한 방 가득인 책을 모두 정리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책을 구입하는 것에 상당히 신중해졌다.
'가끔씩 꺼내서 펼쳐 볼 책인가...?'
이 책은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내 친구에게도 주고 싶어 2권을 샀다.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선물할 정도로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1958년 서울대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선생님과 결혼하신 강인숙선생님의 책이다.
단칸방 신혼집에서 각자의 서재가 있는 집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북적이고 때로는 쓸쓸했던 구십 동갑내기의 64년 부부 일지.
건축과를 전공한 나는 이 제목에 상당히 매료되었다.
글로, 지은, 집.
읽으며 제목의 뜻이 마음에 들어왔을 때의 기분이란!
하나는 아래층에서, 하나는 위층에서 글을 쓰면서
각기 자기 몫의 아픔과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세상에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해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1974년이었다.
이어령 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다.
그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수적이었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고독을 필요로 하는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과정의 이야기이고
한 신부가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나만의 방'이 있는 집에 다다르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은
이어령 씨의 '집 이야기'도 되지 않을 수 없다.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늘 가슴이 충만했다.
생전 처음으로 몸 안에 빈 곳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충족감이 왔다.
아직 철이 이른데도
이어령 씨는 나를 위해 수박을 자주 사 왔다.
다음 해 봄, 아이의 영역은 보장되는 집을 샀다.
집 사기가 이삼 년이나 당겨져서 많이 힘이 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자유는 비싼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 고마웠다.
작으나마 침실이 생긴 것도 좋았으며,
골목이 조용해서 아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그 작은 집은 우리 가족 모두를 만족시켰다.
온 천지가 꽃대궐이었다.
집집마다 라일락이 피어, 골목을 향내로 휘감았다.
나무들도 손톱 같은 새잎을 달고 있어서
세상이 정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듯이,
사람은 누구도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조용히 산다.
둘만 남는 세월이 왔다.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프고 외로웠다.
우리는 그 외로움을 공부하고 글 쓰는 일로 메꾸어갔다.
일과 육아, 살림을 하며 지쳐있던 나에게 이 시간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셨고,
각 시대의 상황이 머릿 속에 그려지며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한 번 정독하고,
가끔씩 책장에서 꺼내 펼쳐지는 장을 읽기도 한다.
어느 쪽을 펼쳐 읽어도 쉽게 문장에 빠져든다. 그리고 재미있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나만 힘든 것 같은 흔들림 속에 있을 때, 펼쳐볼 수 있게.
나의 평점 : 🖤🖤🖤🖤🖤 + 🖤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좌절의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중략)... 아이가 엄마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이다."
_그 길지 않을 시간을 정말 잘 보내고 싶어졌어요.
나의 꿈이 미뤄지는 것에 조바심 내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길지 않을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이 기억으론 오래도록 남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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