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면서
언제부턴가 진짜 내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된 나.
억눌린 성향이 내가 사회에서 쓰는 얼굴인 '페르소나'라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내가 아닌 것 같은 나.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내 이미지'로 굳어져버린 모습.
그것은 어쩌면 내가 억누른 성향이 사회적 가면으로 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융은 이것을 ‘페르소나와 자아의 동일시’라고 말했다.
이 글은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를 진지하게 묻고 싶은 당신을 위한 이야기다.
페르소나란?
콤플렉스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융의 용어 중 하나가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는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온 말로,
융은 페르소나를 집단정신으로부터 많은 노력을 들여 이루어 낸 단면이라고 정의한다.
사실 페르소나는 사람들 사이의 "단순한 타협물과 같은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자아는 상황에 맞게 가면을 바꿔 쓰며 그 사회가 기대하는 바의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물러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면 이 가면을 벗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가면을 적절히 사용하고 벗기도 하는 변장의 기술이 있는 페르소나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페르소나는 아직 무의식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의 투사가 마음대로 벌어지는 것을 막는 하나의 막으로 작동한다.
가면이 없으면, 자기 내적인 것을 한껏 밖에다 투사를 하고 그것이 모두 자신의 것인 양 행동한다.
( → 페르소나는 자아가 만든 '사회적 가면'으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선택하는 태도와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의 내용이 자율적으로 올라와 발현되는 것을 어느 정도 차단하거나 억제한다.
즉, 무의식의 투사를 일정 수준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페르소나 역시 상징이기에 그 안에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페르소나라는 가면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할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페르소나는 내가 아니기에 자신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페르소나는 가면이고, 이를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삶의 한 도구가 될 수 있다. ₁
페르소나는 왜 만들어졌는가?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역할'을 수행한다.
학생, 직장인, 부모, 친구, 연인...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얼굴을 사용한다.
- 선생님으로서 학생 앞에 설 때
- 부모로서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때
- 친구들 앞에서 밝고 유쾌하게 보일 때
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 전체가 아닌, 특정 ‘면’을 의식적으로 골라 드러낸다.
이 역할들은 융이 말한 '페르소나(Persona)', 즉 사회적 가면이다.
융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페르소나'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나라는 존재가 사회와 부딪히지 않고 적응하려면,
일정한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표현의 틀'이었지만,
문제는 이 가면이 점점 '나 자신'처럼 굳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가면’일 뿐이다
페르소나는 말 그대로 가면이다.
라틴어 어원 자체가 무대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에서 왔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보여지는 얼굴'이다. 진짜 내가 아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항상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일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무에게도 말을 걸고 싶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은 내향적인 사람일 수 있다. 이 경우 '밝고 친절한 나'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형성된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는 '거짓된 나'도, '전체의 나'도 아니다.
의식이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이다.
이 모습은 일종의 ‘전략적인 자아’이며, 의식의 산물이다.
자아(ego)와 페르소나를 동일시할 때 생기는 문제
페르소나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기 위한 장치지만, 그것이 자아(ego)와 동일시되면 내면의 욕구와 감정이 억압된다.
이런 억압은 무의식에 쌓이고, 그림자(shadow)로 변형되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항상 책임감 있고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화를 내는 것이 비이성적이라고 여기고,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을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사소한 일에도 과하게 폭발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억눌린 감정이 그림자로 작용한 것이다.
자아와 페르소나의 동일시는 나를 왜곡된 이미지로 만들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길을 막는다.
가면을 자아가 자기 모습이라고 여기면 정작 자신의 삶은 사라진다.
그래서 오랜 사회생활에서 은퇴한 남자들이 허전한 마음이나 무력감에 빠져들곤 한다.
1. 자기 내면과 분리된다.
- 진짜 감정이나 욕망, 상처, 그늘을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 그 감정은 무의식에 억눌리고, 점점 더 멀어진다.
2. 무의식이 그림자처럼 반란을 일으킨다.
- 억눌린 감정, 욕구, 그림자는
무의식에 쌓여 있다가 갑작스러운 분노, 무기력, 우울, 불안으로 터진다.
3. 자기를 잃어버리는 위기.
- 오랜 시간 페르소나에 몰입하면
“내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어.” 하는 정체성 혼란이 온다.
융은 페르소나의 유용성은 인정하되,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진짜 자아(Self)는 훨씬 더 깊고,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일시 하게 되는 계기와 메커니즘
1. 사회적 칭찬, 인정
- “넌 정말 착해.”
- “넌 성실해서 믿음직해.”
- “넌 리더 같아.”
→ 이런 외부 평가에 자아가 점점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2. 역할 몰입
- 직장에서 ‘일 잘하는 사람’
- 가정에서 ‘모두를 돌보는 사람’
- SNS에서 ‘늘 여유롭고 잘 사는 사람’
→ 역할을 수행하는 나가 진짜 나라고 믿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유능한 리더로 평가받는 사람
→ 늘 침착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 슬픔, 외로움, 불안은 철저히 감춘다.
→ 결국 심한 불면, 우울, 분노로 무너진다.
→ 본인의 감정을 “알 수 없다”고 느낀다.
SNS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사람
→ 현실의 고단함과 괴리를 느낀다.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자기 이미지 간극으로 공허해진다.
페르소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가면을 만드는 타협에 나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각각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타협에는 가면을 쓴 사람보다 가면 밖의 사람들이 훨씬 많이 관여한다.
그렇기에 페르소나는 내 것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가깝다.
1. 진짜 감정과 어긋날 때
페르소나는 사회 속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만든 가면이다.
그런데 이 가면이 내 진짜 감정과 점점 멀어질 때, 심리적 긴장이 생긴다.
- 누군가가 늘 밝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는데, 사실은 속으로 분노와 피로를 느끼고 있다면?
→ 이럴수록 점점 '내가 나답지 않다'는 불편감이 커진다.
→ 감정이 무의식에 쌓여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거나, 무기력으로 나타난다.
2. 역할에 갇힐 때
페르소나는 특정 역할에 맞춰 만들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역할이 '나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역할에 갇힌 느낌을 받는다.
- 회사에서는 완벽한 팀장, 집에서는 무조건 헌신하는 엄마.
→ 어느 쪽에서도 솔직한 나는 드러낼 수 없는 삶.
→ “나는 누구지?”라는 정체성 혼란이 찾아온다.
3. 타인의 시선에 끌려갈 때
페르소나는 사회적 인정과 타인의 기대에 맞춰 구성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나를 연기하게 된다.
- 인스타그램에선 늘 멋진 여행과 커피 사진을 올리지만,
현실에선 지쳐 있고 외로움을 느낀다.
→ 타인의 기대에 나를 맞추는 게 너무 피곤해질 때,
→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게 맞나?”는 고민이 든다.
융은 페르소나의 불편함이 나타날 때를 중요한 내면의 전환 신호로 보았다.
그 신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의 역할은 너의 전부가 아니야.
무언가 더 깊은 ‘너’가 눈뜨기를 기다리고 있어.”
페르소나의 불편함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진짜 자기(Self)와 연결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다.
왜 우리는 가면을 벗기 어려울까?
페르소나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오랜 시간 그것을 착용하고 있으면, 벗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가면을 벗는 순간 우리는 타인에게 완전히 노출된다.
가면 없이 나를 드러내는 일은 두렵다.
거절당할까, 실망스러울까,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나라도 괜찮을까?"
"지금의 모습이 나인지, 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연기인지 모르겠어."
이 모호함 속에서 자아는 흔들리고, 자기 상실감은 깊어져 간다.
페르소나에서 자아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와 노력
1. 진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페르소나는 ‘사회 속의 나’일 뿐, ‘내면의 나’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사회에서 인정받는 나 = 진짜 나’라고 착각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이 좋아하는 나를 따라 살게 된다.
결과적으로, 내 내면은 고립되고 단절된다.
그리고 그것은 무의식에서 불안, 무기력, 분노로 나타난다.
2. 내면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 자아와 페르소나가 분리되어 있을 때,
사람은 외부 역할과 내부 감정 사이에서 조율할 수 있다. - 하지만 자아가 페르소나에 잠식되면,
진짜 감정은 억눌리고, 심리적 에너지가 일방향으로 소진된다.
→ 번아웃, 자기 상실, 그림자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3.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융은 “자기실현은 자아가 자기(Self)와 일치해가는 여정”이라 했다.
그 여정의 시작은 자아가 페르소나를 자신과 ‘다른 것’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페르소나에서 자아를 분리하는 노력의 첫 걸음은 "나는 나의 페르소나가 아니다"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장치이지만, 내가 아니다. 자아는 더 깊은 내면에 존재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나는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 이 역할 속의 감정은 진짜 나의 것인가?
- 혼자 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이런 자각이 쌓이면, 점점 페르소나와 자아를 구분할 수 있다.
외부에서 요구하는 '가면'과 내면의 '진짜 나' 사이의 거리를 자각하는 것이다.
‘진짜 나’를 회복하는 길
진짜 나는 완성된 정답이 아니다. 삶을 통해 계속 만들어가고 회복해가는 과정이다.
진짜 나는 종종 상처받기 쉽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습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아이다.
억압된 감정을 마주하고, 페르소나 너머의 나를 알아보려는 태도는 자기(self)로 향하는 개성화의 여정이다.
1. 사회적 역할과 내 감정을 구분하기
“나는 지금 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감정이 나의 진심일까?”
- ‘좋은 엄마’ 역할을 하면서도 지칠 수 있다.
- ‘열정적인 직원’이면서도 속으로는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 역할과 감정의 간극을 자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2. 나의 감정, 욕구, 피로를 기록하고 들여다보기
- 하루에 한 번, ‘내가 느낀 진짜 감정’을 써보는 것.
- “이건 내 감정이 맞아?” 하고 반문해보는 것.
→ 페르소나와 자아의 경계를 인식하게 해준다.
3.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 “나는 늘 긍정적이야.”
- “나는 조용한 사람이야.”
→ 이런 고정된 자기이미지는 페르소나일 수 있다.
가끔은 일부러 다른 모습도 실험하고 시도해보자.
→ 무의식의 다른 자아와 접촉할 수 있다.
₁.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신근영지음. 165-167p
우리는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면을 쓴다.
그리고 페르소나는 사회적 삶의 필수 도구이다.
그러나 그 가면이 내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그 가면이 나의 전부라고 믿게 되는 순간부터 생긴다
그때부터 나의 감정은 억눌리고,
진짜 ‘나’는 자꾸만 멀어진다.
가면을 벗는 일은 두렵지만, 가면을 벗어도 나는 존재한다.
진짜 나를 회복하는 길은
페르소나와 자아의 경계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페르소나는 실제로 자신이 아닌 모습이지만,
자신도 그렇고 타인도 그것이 ‘나’라고 믿는다.”
“우리가 페르소나를 내려놓는 순간, 그림자와 마주하게 된다.”
“페르소나가 단지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그 아래에 있는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가면이다.
진짜 나는 그 너머에 있다.”
– C.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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