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기록

김밥케이크

awelcomerain 2025. 6. 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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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싱싱한 시금치를 한 봉지 선물 받았다. 열어보니 활짝 핀 꽃처럼 단단하게 펼쳐진 섬초가 한가득이다.
아이 손가락 두께만 한 분홍빛 뿌리 끝이 보랏빛을 띤다.
달큼한 향을 풍기는 섬초를 보니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 머릿속이 바빠진다.

이렇게 실한 뿌리가 길게 잘라진 섬초는,
뿌리를 칼등으로 살살 긁어, 된장을 말갛게 푼 바지락 시금칫국을 끓이면 최고다.
표고버섯과 무를 얇게 썰어 한 솥 끓여두면 가족들 모두 반찬 없이 한 그릇 뚝딱 해준다.
찬바람이 부는 날 이만한 국이 없다.

국 끓일 양을 남기고 커다란 냄비를 꺼내 소금을 넣어 물을 끓였다.
살짝 데쳐 물기를 꼭 짜낸 시금치에 국간장, 맛소금,
참기름 두어 바퀴 두른 뒤 막 갈아낸 깨를 잔뜩 뿌려,
털어내듯 섞으며 김밥 만들 준비를 시작한다.

시금치나물을 산더미 무쳤다는 건, 김밥을 왕왕 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흙이 묻은 당근을 닦아 껍질을 벗기고, 길쭉길쭉하고 얄따랗게 채를 썬다.
예열한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채 썬 당근들을 넣는다. 치지직.
여기에도 국간장 조금 둘러주고 소금으로 간을 끝낸다.
서걱한 길쭉히 채 썬 당근을 젓가락으로 비벼 가며 섞는다.
주홍빛을 띄던 당근이 단무지 색상과 가까워지면 불을 끈다.
잔열로 너무 흐물거리지 않게 볶아 넓은 접시에 펼쳐 식힌다.

다음은 계란.

아이들과 나만 있으니 10개면 된다.
계량컵에 계란을 탁 탁 깨뜨려 젓가락으로 알끈을 집중해서 제거한다.
미림과 혼다시를 넣고 탈탈탈 섞는다.
이 즈음 밥솥에 김이 빠져나오며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다는 안내음성이 들린다.

넓은 볼을 꺼내 밥을 펴가면서 덜어낸다.
맛소금을 골고루 뿌리고 무쇠 절구에 깨를 갈아 쏟는다. 듬뿍. 참기름은 생략.
밥이 짓눌리지 않도록 살살 들어가며 섞어준 뒤 창가에 두어 식힌다.

기름 적신 키친타월로 팬을 닦은 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부쳐질 만큼
계란물을 부어 팬을 살살 돌린다.
가장자리가 얇아지지 않도록 계란물이 굴러가는 것을 손목으로 느끼며 골고루 펼쳐준다.
도마에 옮겨 한 김 식힌 후 크레이프처럼 펼쳐진 계란을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어 칼국수 면을 썰듯 길게 자른다.
이때! 지단을 부치며 설거지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묵을 꺼내 뜨거운 물에 담가 기름을 흘려보낸다.
팬에 물기를 날리며 볶다가 간장과 미림 설탕, 다진 마늘을 넣어 달큰하고 쫀득하게 졸여낸다.
어묵도 얇고 기다랗게 국수처럼 썬다.
여기에 시판에서 판매하는 하얀 단무지와 우엉만 있으면 재료 손질은 끝!

계획형에 가까운 나는 주말만큼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다.

‘지금이 몇 시지? 아니 벌써?’ 그런 시간감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것만으로 퍽 자유롭다 느낀다.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움.
그러려면 식사시간에서 해방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배꼽시계는 주말에도 정확하니까.

그럴 때 나는 김밥을 싼다. 여덟아홉 줄을 싸서 아이 입 크기에 맞게 썰어 식탁에 올려둔다.
이것이 바로 김밥케이크다.

"오늘은 아무 때나 배고플 때 하나씩 집어먹자."

그 옆으로 과일도 두세 가지 썰어 담고 주스도 꺼내둔다. 오늘은 빨간 날이니까.
그렇게 김밥 하나로 시간의 자유를 얻은 나는 편하게 책도 보고 자잘 자잘한 손재주도 펼쳐본다.
시원한 맥주나 미지근한 와인을 곁들이며.

하루 종일 배고픈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이 해결된 지금,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시원한 맥주 풀탭을 딸깍 따니 나의 시간이 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김밥케이크는 자유의 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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